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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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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노 남부 1
‘산노(三納)’라는 지명은 ‘산노샤(山王社)’가 있었던 것에서 유래한다. 산노샤에 대해서는 1646년의 「쇼호고초(正保郷帳)」에 기술되어 있다.
1955년에 노노이치마치(野々市町)에 편입되었다. 이 지역의 수호신사는 구스카히요시 신사(日下日吉神社)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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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카히요시 신사 남부 2
15세기 후반에 창립된 것으로 전해진다. 에도 시대에는 히요시샤(日吉社)라 불렸으나, 1875년에 구스카히요시 신사(日下日吉神社)로 개칭하였다. 예로부터 출산의 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주변 마을에서 순산을 기원하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았다고 전해진다. 2007년에 본전, 배전(拝殿)이 신축되었다. ...
 
목조 주자 남부 2-1
목조 주자(廚子)는 지붕 너비 1.25m, 당(堂) 너비 0.76m, 높이 0.8m, 대좌(臺座)는 옻칠로 되어 있다. 에도 말기의 귀중한 주자이다. 2007년에 구스카히요시 신사(日下日吉神社)를 신축하면서 복원되었다. 이때, 문짝 안쪽에서 숨겨져 있던 여우 그림이 발견되었다.
산노곤겐신상(山王権現神像)은 높이 40cm이며, 신상 측면에 새겨진...
 
석조 산노곤겐신상 남부 2-2
목조 주자(廚子)는 지붕 너비 1.25m, 당(堂) 너비 0.76m, 높이 0.8m, 대좌(臺座)는 옻칠로 되어 있다. 에도 말기의 귀중한 주자이다. 2007년에 구스카히요시 신사(日下日吉神社)를 신축하면서 복원되었다. 이때, 문짝 안쪽에서 숨겨져 있던 여우 그림이 발견되었다.
산노곤겐신상(山王権現神像)은 높이 40cm이며, 신상 측면에 새겨진...
 
산노 아라미야 유적 남부 3
산노 도헤이다고시 유적은 14~15세기의 취락유적이다. 굴립주 건물과 수혈 유구가 확인되었다. 현재의 스즈시(珠洲市)에서 생산된 스즈야키 옹기와 가가시(加賀市) 주변에서 생산된 사발 등, 도자기와 하지키 접시가 출토되었다. 조몬토기와 타제 돌도끼, 토우의 파편도 출토되었다.
산노 아라미야 유적은 8~9세기의 취락터이다. 수혈주거와 굴립주 건물이 확...
 
산노 도헤이다고시 유적 남부 4
산노 도헤이다고시 유적은 14~15세기의 취락유적이다. 굴립주 건물과 수혈 유구가 확인되었다. 현재의 스즈시(珠洲市)에서 생산된 스즈야키 옹기와 가가시(加賀市) 주변에서 생산된 사발 등, 도자기와 하지키 접시가 출토되었다. 조몬토기와 타제 돌도끼, 토우의 파편도 출토되었다.
산노 아라미야 유적은 8~9세기의 취락터이다. 수혈주거와 굴립주 건물이 확...
 
산노 니시요사 유적 남부 5
산노 도헤이다고시 유적은 14~15세기의 취락유적이다. 굴립주 건물과 수혈 유구가 확인되었다. 현재의 스즈시(珠洲市)에서 생산된 스즈야키 옹기와 가가시(加賀市) 주변에서 생산된 사발 등, 도자기와 하지키 접시가 출토되었다. 조몬토기와 타제 돌도끼, 토우의 파편도 출토되었다.
산노 아라미야 유적은 8~9세기의 취락터이다. 수혈주거와 굴립주 건물이 확...
 
도헤이다 남부 6
도헤이다(藤平田)라는 지명은 혼간지(本願寺)의 10대 법주 쇼뇨의 일기인 「덴분일기(天文日記)」에서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 기술을 보면, 1537년 잇코잇키(一向一揆: 소작농, 승려, 신사의 신관들이 무사계급에 반하여 일으킨 난) 때 민중 측의 유력인사였던 도헤이다 조넨이 이 지역에 거주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지역의 수호신사는 나카오...
 
기요가네 남부 7
1599년에 마에다 도시이에가 가신에게 보낸 서찰에 이 마을에 대한 언급이 있다.
쇼와 시대에는 수박 산지로 유명하였다.
이 지역에는 ‘돌신님’이라는 민간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눈부신 광채를 내뿜는 돌이 있었던 장소에 사당을 짓고, 돌신님으로 모셨다는 이야기이다. 1906년에 하치만샤(八幡社)와 스가와라샤(菅原社)가 기요가네추구 신사(清金...
 
후지히라 남부 8
후지히라(藤平)는 근세에 성립된 마을이다. 1670년에는 백성수 5명, 1876년에는 가옥수 9채, 사람수 48명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1955년에 노노이치마치(野々市町)에 편입되었다.
이 지역에 있는 긴쿄하치만 신사(錦橋八幡神社)는 1580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1989년에 폐전(幣殿)을 신축하고, 또 본전도 개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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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헤이다신무라 조세 약정서 남부 8-1
1670년에 발행된 조세 약정서. 납세의 내용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 것으로, 쌀 수확량 234섬, 세율(免: 멘) 55%라는 기재가 있다. 또한 대부미(번(藩)이 백성에게 빌려주는 쌀)에 대한 이자는 면제되었으며, 잡세(小物成: 고모노나리) 없음이라는 기재도 있다....
 
도미오쿠 소학교 터 남부 9
도미오쿠 소학교는 1902년에 개교하였다. 1910년에는 고등과(高等科)를 병설하였다. 태평양전쟁 후 교육기본법에 따라, 도미오쿠 소학교와 도미오쿠 중학교로 분리되었다. 1955년, 노노이치마치와 도미오쿠무라의 합병에 따라, 소학교, 중학교가 각각 노노이치마치의 학교에 통합되었다. 현재, 도미오쿠 소학교 터는 이시카와현 농업시험장이다. 도미오쿠 소학교의 연...
 
도미오쿠 지구의 해충 쫓기 남부 9-1
도미오쿠 지구의 해충 쫓기는 7월 20일 직전의 토요일에 열린다. 저녁이 되면, 이 지구의 14개 마을 주민자치회가 각 마을의 신사에서 출발한다. 초롱에 마을 이름을 적어 넣은 후 이것을 장대 높이 매단 ‘장대초롱’과 큰북을 선두로 하여, 광장의 대형 횃불을 이정표 삼아 횃불을 든 아이들의 행렬이 행진한다. 오후 8시에는 대형 횃불이 점화되고, 용맹스런 큰...
 
도미오쿠 존카라 남부 9-2
도미오쿠 존카라는, 가사는 옛날부터 변함이 없지만 춤 스타일은 1935년경에 아와다, 간바야시, 이 두 지구의 춤(의 스타일)을 합쳐서 만들어졌다. 벼베기나 김매기를 할 때의 몸짓을 접목시켰다고 한다.
20세기 전반까지 간바야시에서 췄던 존카라의 경우, 남자는 탈로 얼굴을 가리고 재미있고 유쾌하게 춤을 추고, 여자는 머리를 묶고 격식을 차린 옷차림...
 
일촌일심비 남부 10
쇼와공황으로 인해 일본 전체가 불황이던 가운데, 1932년, 도미오쿠무라는 부흥의 모범이 되는 경제갱생 지정촌이 되었다. ‘一村一心(한 마을 한 마음)’이라는 슬로건 아래, 잉어사육과 수박재배 등의 신사업을 비롯한 다각도의 부흥을 위해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실적을 인정받아, 1936년에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경제갱생 특별지정촌이 되었다. 이 석비는 ...
 
나카바야시 남부 11
나카바야시(中林)라는 지명은 14세기의 사료에 등장한다.
이 지역 일대를 영유했던 하야시씨는 무사단의 대들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하야시 가문은 1221년 조큐의 난에서 패배한 후 고토바 상황(上皇) 측에 섰기 때문에 몰락하였다. 나카바야시에는 일찍이 하야시씨의 저택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그 흔적이 없다.

1712년, ...
 
나카바야시의 사자춤 남부 11-1
나카바야시(中林)의 사자춤은 1890년경에 시작되었다고 한다. 사자춤의 검무는 나카바야시에서 검술도장을 운영했던 니시무라 세이타로가 지도한 것이다. 1869년 나카바야시에서 태어난 세이타로는 지오센마치(지금의 가나자와시 이즈미가오카 2초메)에 도장을 열었다. 농민에게 인기가 있었던 마치다 한베이를 스승으로 모시고, 미즈노 진법 일전류를 습득하여, 이를 나카...
 
스에마쓰 남부 12
스에마쓰(末松)라는 마을명은 1646년의 「쇼호고초(正保郷帳)」에 등장한다.
다른 사료에는 1670년에는 백성수 24명, 1876년에는 백성수 194명이라는 기록도 남아 있다.
1889년에 도미오쿠무라(富奥村)에 편입되었다. 쇼와 시대 초기 무렵에는 수박재배에 힘을 기울여, 맛이 좋기로 유명해졌다.
이 지역에 있는 오에하치만 신사...
 
스에마쓰무라 조세 약정서 남부 12-1
1670년에 발행된 조세 약정서. 납세의 내용에 대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쌀 수확량 828섬, 세율(免: 멘) 56%라고 적혀 있다. 또한 대부미(번(藩)이 백성에게 빌려주는 쌀)에 대한 이자는 면제되었으며, 잡세(小物成: 고모노나리) 없음이라는 기재도 있다....
 
고겐가 문서 남부 12-2
고겐(古源) 가문의 문서 414점은 에도 시대부터 근대에 걸쳐, 조세와 농지 등에 관해 기록한 것이다. 스에마쓰무라(末松村)의 운영방법과 농업경영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이다....
 
스에마쓰 고분 남부 13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수많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고대의 대사원 터인 스에마쓰 폐사(末松廃寺) 터가 대표적이다. 이 지구는 데도리가와 선상지의 표고가 높은 지점(해발 35〜40m)에 있다. 건조하고 지면 아래에 돌이 많은 선상지의 특징상,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7세기 무렵까지는 무논을 개발하기가 곤란하였다. 7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무논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호후쿠지 터 남부 14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수많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고대의 대사원 터인 스에마쓰 폐사(末松廃寺) 터가 대표적이다. 이 지구는 데도리가와 선상지의 표고가 높은 지점(해발 35〜40m)에 있다. 건조하고 지면 아래에 돌이 많은 선상지의 특징상,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7세기 무렵까지는 무논을 개발하기가 곤란하였다. 7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무논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오다치 저택터 남부 15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수많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고대의 대사원 터인 스에마쓰 폐사(末松廃寺) 터가 대표적이다. 이 지구는 데도리가와 선상지의 표고가 높은 지점(해발 35〜40m)에 있다. 건조하고 지면 아래에 돌이 많은 선상지의 특징상,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7세기 무렵까지는 무논을 개발하기가 곤란하였다. 7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무논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고겐도 저택 터 남부 16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수많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고대의 대사원 터인 스에마쓰 폐사(末松廃寺) 터가 대표적이다. 이 지구는 데도리가와 선상지의 표고가 높은 지점(해발 35〜40m)에 있다. 건조하고 지면 아래에 돌이 많은 선상지의 특징상,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7세기 무렵까지는 무논을 개발하기가 곤란하였다. 7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무논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스에마쓰 시나노 저택터 남부 17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수많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고대의 대사원 터인 스에마쓰 폐사(末松廃寺) 터가 대표적이다. 이 지구는 데도리가와 선상지의 표고가 높은 지점(해발 35〜40m)에 있다. 건조하고 지면 아래에 돌이 많은 선상지의 특징상,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7세기 무렵까지는 무논을 개발하기가 곤란하였다. 7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무논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스에마쓰 폐사 터 남부 18
스에마쓰 폐사(末松廃寺) 터는 7세기 후반에 건립된 사원 터이다. 에도시대부터 알려졌다. 1937년, 현지에 살던 다카무라 세이코씨가 안을 내어 발굴조사가 이뤄졌는데, 이 장소가 고대의 사원 터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1939년에는 국가로부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61년, 다카무라씨가 용수로에서 은제 와도카이친(和同開珎: 일본 최초의 유통화폐)...
 
와도카이친 은화 남부 18-1
1961년에 현지에 살던 다카무라 세이코씨가 금당 서쪽에 있는 수로에서 수습하였다. 이 발견이 본격적인 발굴조사로 이어졌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자료이다.
와도카이친(和同開珎)은 708년에 발행된 돈인데, 일본 최초의 유통화폐로 알려져 있다.
특히 은화는 708년 5월에 발행되어, 이듬해 8월에 폐지되었기 때문에, 유통량이 매우 적어 희소하...
 
도도로키 남부 19
도도로키는 지금의 스에마쓰 2초메 일대에 해당한다. 여우나 너구리가 밤중에 지나가는 사람을 홀렸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이 지역은 옛날에 동남쪽에는 하치만샤(八幡社), 서쪽에는 에비스샤(蛭子社)가 있었다. 하치만샤는 1881년에 도도로키 하치만 신사(轟八幡神社)로 개칭하고, 1907년에는 에비스 신사(蛭子神社)를 합사(合祀: 통합)시켰다. 1909년...
 
간바야시 남부 20
중세에 간바야시(上林)는 ‘하야시고(林郷)’라 불리는 지역 안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하야시고’는 12세기 후반 무렵, 유력한 영주였던 하야시씨가 본거지로 삼았던 지역이다.

1352년, 이 지역의 마름이었던 오쿠와 겐유는 하쿠산 본궁(지금의 시라야마히메 신사)에 제례에 필요한 쌀을 바치지 않았다. 이 신사의 신관은 이를 제...
 
간바야시무라 조세 약정서 남부 20-1
1670년에 발행된 조세 약정서. 납세의 내용에 대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쌀 수확량 794섬, 세율(免: 멘) 60%라고 적혀 있다. 또한 대부미{번(藩)이 백성에게 빌려주는 쌀}에 대한 이자는 면제되었으며, 잡세(小物成: 고모노나리) 없음이라는 기재도 있다....
 
하야시고 하치만 신사 남부 21
1013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하야시고(林郷)의 총사(総社: 특정 지역 내의 신사의 제신을 한 곳에 모아놓고 모시는 신사)로서 많은 이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하야시씨와 마름 오쿠와 겐유는 수호신으로서 숭경하였다. 옛날에는 매우 광대한 부지였다. 울창하게 우거진 삼나무숲이 있어서 간바야시노 무라(神林の村)라고도 불리었다. 14세기 중반부터 도가시 가문의...
 
간바야시의 모밀잣밤나무 거목 남부 21-1
예로부터 하야시고 하치만 신사(林郷八幡神社)의 신목(神木)으로서 보호되어온 모밀잣밤나무 거목이다. 1988년에 전국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나무였다고 한다.
「옛날, 간바야시노 무라에 신령과 부처를 깊이 숭상하는 노인이 있었다. 어느 날, 이 노인이 저녁 때 어둑어둑한 신사에서 참배를 하고 있자니, 고운 옷을 차려 입은 미...
 
간바야시 하야시씨 저택 터 남부 22
간바야시에는 하야시씨의 저택 터가 있는데, 여기에는 사당이 세워져 있다. 옛날에는 말이나 저택과 관련한 지명도 인근에 남아있었던 듯하다. 하야시고 하치만 신사(林郷八幡神社) 북쪽에 있는 몇몇 지명으로 보더라도 인근 일대가 하야시씨의 저택 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바야시·신조 유적 남부 23
간바야시·신조(上林新庄) 유적에서는 1990년~1995년에 걸쳐, 총 40,750㎡의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7세기 초반부터 9세기 말에 걸쳐 계속 취락생활을 영위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수혈주거 85동, 굴립주 건물 54동이 발견되었다. 7세기 초반의 취락에서는 2동 정도의 수혈주거와 굴립주 건물이었으나, 7세기 말부터는 7~8동으로 이루어진 취락이...
 
간바야시 고분 남부 24
간바야시(上林) 고분은 1991년 간바야시·신조 유적의 서쪽 끝에서 발견되었다. 분구나 내부시설은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매장하는 부분인 횡혈식 석실의 하단 돌배치가 약간 발견되었다.
석실은 총 길이 7.9m, 널길 길이 3.2m, 널방 길이 4.7m. 또한 내부 폭은 널길부가 0.8m, 널방부가 1m. 안쪽이 심하게 손괴되었는데, 도굴이 있었던 것...
 
가미신조 니시우라 유적 남부 25
가미신조 니시우라 유적은 신조 2초메 교차로 남쪽에 있다. 1989년의 발굴조사에 의해, 3세기 후반~9세기에 걸친 취락이 확인되었다. 8~9세기의 취락에서는 수혈주거 5동과 굴립주 건물 15동이 발견되었으며, 취락 안에서 5번 정도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가미신조 니시우라 유적은 북쪽의 간바야시·신조 유적의 대취락과 인접해 있다....
 
가미신조 하야시씨 저택 터 남부 26
19세기 중엽에는 도루이(土塁)가 남아있었다. 또한 주변에 있는 석기 시대의 석총을 파면, 심한 비바람이 덮친다는 전설도 남아있다.
 
신조(구 가미신조) 남부 27
1345년,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시조인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도가시 우지하루를 이 영지의 마름으로 임명하였다.
당시 이 지역은 도가시신조(富樫新荘)라 불리었다. 이 ‘신조(新荘)’가 지금의 지명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1955년에 노노이치마치(野々市町)에 편입되었다.
이 지역의 남서쪽에 있는 도가시고 하치만 신사(富樫郷八幡神社)...
 
신조(구 시모신조) 남부 28
1345년에 아시카가 쇼군 가문의 시조인 아시카가 다카우지가 도가시 우지하루를 ‘도가시신조(富樫新荘)’ 지역의 마름으로 임명하였다. 이 ‘신조(新荘)’가 지금의 지명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1955년에 노노이치마치(野々市町)에 편입되었다.
이 지역의 수호신사는 스가와라 신사(菅原神社)이다. 창건은 1150년 이전이라고 전해진다. 1906년...
 
시모신조 다나카다 유적 남부 29
시모신조 다나카다 유적은 1994년에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수혈주거 3채, 굴립주 건물 4채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발굴된 장소는 취락 외연부(外緣部)이며, 취락의 중심부는 신조 5초메 부근인 것으로 추측된다. 수혈주거는 8세기에 지어진 것이며, 굴립주 건물은 그 이후에 지어졌다. 정치적 중심지였던 시모신조 아라치 유적 주변에 존재했던, 일반적인 취락의 하나...
 
시모신조 아라치 유적 남부 30
시모신조 다나카다 유적은 1994년에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수혈주거 3채, 굴립주 건물 4채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발굴된 장소는 취락 외연부(外緣部)이며, 취락의 중심부는 신조 5초메 부근인 것으로 추측된다. 수혈주거는 8세기에 지어진 것이며, 굴립주 건물은 그 이후에 지어졌다. 정치적 중심지였던 시모신조 아라치 유적 주변에 존재했던, 일반적인 취락의 하나...
 
아와다 남부 31
지금의 아와다(栗田)는 원래는 ‘아와다무라(粟田村)’와 ‘신보무라(新保村)라는 2개의 마을로 나뉘어 있었다. 그러나 아와다무라에서 홍수가 거듭되면서, 아와다무라의 주민 전체가 신보무라(지금의 아와다)로 이주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대로변에 있었기 때문에, 19세기 후반 무렵에는 상업이 발달하여, 활기찬 장소였다. 1955년 노노이치마치(野々市町...
 
아와다의 사자춤 남부 31-1
아와다(粟田)의 사자춤은 1977년 도요다히요시 신사(豊田日吉神社) 개축에 맞춰, 유지를 받들어 27년만에 부활시킨 것이다. 보후리(棒振り: 칼 등을 들고 사자에 맞서 싸우는 사람)의 레퍼토리도 다양한데, 구사리가마(鎖鎌: 끝에 쇠뭉치가 달린 쇠줄을 장치한 낫. 무기의 일종), 퉁소 등도 포함된다. 또한 옛날부터 전승되고 있는 피리, 큰북, 샤미센 등이 어...
 
도요다 히요시 신사의 석등롱 남부 32
도요다히요시 신사(豊田日吉神社) 배전(拝殿) 앞에는 돌로 만든 한 쌍의 등롱이 봉납되어 있다. 이 등롱에 새겨진 문자를 통해, 1695년에 가가번(加賀藩)의 한 번사(藩士: 번에 소속된 무사)가 기증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또한, 9명의 법호도 새겨져 있다는 점으로 보아, 이 9명을 공양하기 위해 건립된 것이다. 제작 당시의 연도가 새겨져 있는 석등롱으로서...
 
아와다 유적 남부 33
아와다 유적은 조몬 시대 말기(약 3,000년 전)~18세기 전반까지의 유적이다. 남북 약 600m, 동서 약 500m에 펼쳐져 있다. 조몬 시대의 주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조몬 토기와 타제 돌도끼가 출토되었다. 또한 타제 돌도끼의 박편도 다량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타제 돌도끼를 만드는 재료가 채취되던 장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8세기 후반에서 ...
 
야하기 남부 34
야하기(矢作)라는 지명은 중세에 화살 만드는 일을 업으로 삼았던 자가 많이 살았다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전해진다. 1486년에 승려 도코가 하쿠산에서 하산한 후 야하기에 묵었을 때 이 지역에 얽힌 단가(短歌)를 읊었다.

1955년에 노노이치마치(野々市町)에 편입되었다. 과거에는 농촌지대였으나, 지금은 집합주택, 상점, 회사 등이 건설되고 ...
 
후지오카 반도 저택 터 남부 35
도가시씨의 가신 후지오카 반도의 저택 터. 후지오카 반도는 1488년에 다코성(高尾城)이 함락되었을 때에 전사하였다. 19세기에는 주변에 도루이(土塁)와 해자 터가 남아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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