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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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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안켄 북부1
고안켄(高安軒)은 1350년에 도가시 다카야스가 다이조지(大乘寺) 제4대 주지인 메이호 소테쓰의 혼령을 모시기 위해 창건한 절이다.
1915년, 다이조지를 창건한 뎃쓰 기카이의 탑소(塔所: 유골을 모셔놓은 장소) 터라고 전해지는 장소의 토지를 개간할 때, 땅 속에서 유골이 담긴 석궤가 발견되었다. 현재의 고안켄은 유골의 안치를 겸하여 1927년에 ...
 
다이조지 터 북부 2
다이조지(大乘寺)는 처음에는 도가시 이에히사가 오시노쇼라는 곳에 승려 초카이를 주지로 삼고 세운 밀교사원이었으나, 이에히사와 초카이가 에이헤이지(永平寺)에서 뎃쓰 기카이를 모셔와, 1293년에 개창한 가가 국(加賀国: 지금의 이시카와현 남부) 최초의 선종 절이다.
1488년 가가 지역의 잇코잇키(一向一揆: 소작농, 승려, 신사의 신관들이 무사계급에...
 
오시노 마루키 북부 3
오시노 마루키(押野丸木)는 지금의 오시노 1초메의 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었다. 하쿠산시 요코에로 향하는 길의 분기점에 있는 마을이었다.
현재, 이 분기점 모퉁이에 ‘마루키의 자호지장(子護地蔵)’이라는 어린이를 수호하는 지장보살이 안치되어 있는데, 매년 8월 24일 저녁에 지장보살 축제가 개최된다.
전국에서 열리는 지장보살 축제는 정토진종...
 
오시노 대총 유적 북부 4
노노이치시(野々市) 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 또 광대한 데도리가와 선상지 내에서도 가장 빨리 조몬인이 정착하였다.
유적은 4,000년~3,800년 전 무렵의 것이다.
부근에는 큰 무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의 경지정리로 인해 봉분이 깎여, 무덤의 정확한 장소는 미상이다. 사료에 따르면, 둘레 약 73m의 원분(圓墳...
 
오시노 북부 5
지금의 오시노(押野)라는 지명은 가마쿠라 시대 후기의 장원(莊園) ‘오시노쇼(押野庄)’에서 유래하였다. 그 범위는 노노이치시의 경우 오시코시에서 혼마치 북부, 가나자와시의 경우 요카이치, 요코가와, 히사야스에 걸쳐 있다.
1488년 가가(加賀) 잇코잇키(一向一揆: 소작농, 승려, 신사의 신관들이 무사계급에 반하여 일으킨 난) 때에는 민중 측의 다카...
 
오시노의 해충 쫓기 북부 5-1
해충 쫓기는 벼 해충을 횃불로 쫓는 농경의례로, 매년 여름에 행해진다.
가가(加賀) 지역에서는 에도 시대 중엽에 행해졌다.
오시노의 해충 쫓기는 매년 7월 23일에 열린다. 큰북과 횃불을 든 행렬이 오후 7시에 다카미무스비 신사(高皇産靈神社)를 출발하여, 오시노기타 공원의 대형 횃불을 향하여 마을을 돈다. 도중에 다른 지구의 해충 쫓기 행...
 
세키와케 히비키마스 현창비 북부 6
히비키마스(響升)는 옛날 스모선수이다. 본명은 시미즈 이치타로이며, 1859년에 오시노무라에서 태어났다. 신장 180cm, 체중 135kg의 타고난 체격 덕분에 강렬한 밀기를 주특기로 하여, 1892년에는 세키와케(關脇: 스모선수 계급의 하나)에 등극했다. 1899년에 은퇴한지 4년 후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히비키마스의 사후에 오시노무...
 
도무라 고토 집터 북부 7
오시노무라의 고토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고문서인 ‘고토가(後藤家) 문서’ 약 1,800점은 이시카와현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고토가(家)는 도가시 야스토의 3남 무네토시가 시조이다. 고토가(家)는 잇코잇키(一向一揆: 소작농, 승려, 신사의 신관들이 무사계급에 반하여 일으킨 난)를 피하기 위해 에치젠으로 달아났으나, 가가(加賀) 지역에 다시 돌아와, 오시...
 
오시노 다치나카 유적/오시노 저택터 북부 8
오시노 다치나카 유적/오시노 저택터는 다치노 초등학교의 남동쪽 일대에 있는 유적이다.
오시노 다치나카 유적은 야요이 시대 중기 후반과 후기 후반의 취락터이다.
오시노 저택터는 무로마치 시대의 도가시씨 일족의 저택이다. 집주인은 1335년에 가가(加賀) 지역의 슈고(守護: 무사 관직의 하나)에 오른 도가시 다카이에의 동생 도가시 이에요시인데...
 
조구지 터 북부 9
조구지(上宮寺)는 정토진종 대곡파에 속한다. 사료에는 1360년경에 유이쇼라는 승려가 오시노에 사암(寺庵)을 세운 것이 시초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이쇼가 오시노무라에 묵었을 때, 자고 있는데 머리맡에 동자의 모습을 한 쇼토쿠 태자가 나타나 초당의 재흥을 빌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유이쇼는 몹시 황폐한 초당과 태자상을 발견한 후, 머리맡에서 들은...
 
오시코시 북부 10
오시코시라는 지명은 17세기 중엽에 가가번(加賀藩)이 작성한 사료 「쇼호고초(正保郷帳)」에서 처음 등장한다. 고토가(後藤家) 문서에 따르면, 가타우리(오이의 일종)와 가지가 생산되었다.
오시코시 1초메에 있는 하쿠산 신사(白山神社)는 8세기 후반 경에 창립되었다고 전해진다.
「옛날, 이 마을에 요시베라는 남자가 있었다. 요시베는 강물에 떠...
 
노시로 북부 11
노시로(野代)에서는 3,000년 전 무렵의 토기가 수습되었는데, 옛날부터 사람들이 생활을 영위했음이 알려져 있다.
노시로에서는 냇돌(川石)을 쌓아 올린 2개의 무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 무덤들은 니소노총(二艘野塚)이라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이 무덤은 지금은 확인이 불가능하지만, 메이지 시대의 그림에 ‘석총’이라고 적힌 구획이 있는데, 이것이 ...
 
노시로무라 조세 약정서 북부 11-1
가가번의(加賀藩) 3대 번주 마에다 도시쓰네는 농정을 중심으로 한 대대적인 개혁을 단행하였다. 이전에는 검지(檢地)라는 토지조사를 통해 마을의 고쿠다카(石高: 쌀 등의 생산량의 단위)와 멘(免: 세율)이 결정되었다. 그러나 이 개혁에서의 법령에 의해, 검지를 실시하는 일 없이 고쿠다카와 멘을 마을이 자율적으로 신고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조세 약정서...
 
나가이케 북부 12
「가가국 이시카와군 촌지(加賀國石川郡村誌)」에는 ‘나가이케무라(長池村)’라는 마을 이름의 유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재되어 있다. 지형이 남북으로 길고, 취락이 남쪽에 집중되어 있으며, 또 길고 가는 못을 메워서 ‘무라(村)’가 되었기 때문에, ‘나가이케무라’라 부른다.
메이지부터 다이쇼 시대에 걸쳐 실시된 경지정리에 의해, 남북으로 가늘고 길었던...
 
나가이케무라 조세 약정서 북부 12-1
1670년에 발행된 나가이케무라(長池村)의 조세 약정서. 납세의 내용에 대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쌀 수확량 130섬, 세율(免: 멘) 45%라는 기재를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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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이케 기타노하시 유적 /  나가이케 니시탄보 유적 북부 13/14
나가이케 기타노하시 유적은 14세기 후반~16세기 전반에 걸쳐 형성되었던 농촌취락이다.
발굴조사에서는 크게 구획된 주거지역과 작게 구획된 주거지역이 발견되었다. 주거지역은 굴립주 건물의 주거와 우물, 그리고 작업창고로 보이는 수혈 유구로 구성되어 있다. 6번의 재건축이 이뤄진 장소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나가이케 니시탐보 유적에서...
 
경총 북부 15
경총(經塚)은 경전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땅속에 묻은 후 무덤을 만든 것이다. 12세기 말엽 경에 시작된 풍습이다.
17세기 초반 무렵까지는 취락의 안전 등을 기원하며 경전의 문자를 적은 수많은 작은 돌을 쌓아 올린 무덤(역석 경총)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오쿄즈카(御経塚)에 있는 경총은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이시카와현 내에서는 드물...
 
석조 부대사상 북부 15-1
부대사(傅大士. 497-569)는 중국의 불교도로, 경전을 넣어두는 윤장(輪藏)을 창시했다. 후세에는 경장(經藏) 등에 부대사의 조각상이 안치되었다. 경전을 수호한다는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상은 1839년에 석공(石工)이었던 다쿠마가 제작하였다. 현재, 노노이치시 향토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다....
 
쓰카고시 축제 북부 15-2
경총(經塚)은 ‘쓰카고시야마(塚腰山)’라고도 불린다. 부대사의 석상을 모신 사당이 안치되어 있다. 쓰카고시야마에서는 매년 2월 15일에 쓰카고시 축제가 열릴 때, 사당 문이 개방된다. 옛날에는 2월 15일이 휴일이었으며, 촌장이 술 한 되를 경총에 바쳤다.
구전에 따르면, 쓰카고시야마에는 여성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고 한다. 또한 「관혼상제 등에...
 
오쿄즈카 신덴 고분군 북부 16
1986-1996년의 발굴조사에서, 3세기 말 경부터 4세기 중반 경의 고분 15기가 발견되었다. 주구(周溝)가 발견됨으로써, 고분의 존재가 확인되었다. 분구와 매장시설은 평평하게 깎여나가, 소실되었다. 무논 벼농사의 발전에 따라, 인구는 증가하였다. 사람들은 새로운 거주지나 경작지의 확보를 둘러싸고, 집단끼리 서로 싸우게 되었다. 강한 집단이 약한 집단을...
 
오쿄즈카 북부 17
‘오쿄즈카(御經塚)’라는 지명은 취락의 북부에 있는 경총(經塚)에서 유래하였다. 1670년에 발행된 이 마을의 조세 약정서에는 쌀 수확량 1,028섬, 가옥수 17채, 백성수 25명 등의 기록이 있다.
근대에는 오시노무라(押野村)의 관할 하에 있었다. 1956년에 가나자와시에 편입되었으나, 지역주민들이 분리를 강력히 희망하여, 이듬해인 1957년에...
 
오쿄즈카의 해충 쫓기 북부 17-1
오쿄즈카의 해충 쫓기는 매년 7월 21일 직전의 토요일에 열린다. 과거에 태평양전쟁으로 중단된 적이 있다. 해충 쫓기 행렬의 출발점은 사나타케 신사(佐那武神社)이다. 큰북을 두드리면서 횃불을 들고 지구 내를 누빈다. 도중에 다른 지구의 해충 쫓기 행렬도 참가하여, 오쿄즈카 사적 공원의 대형 횃불을 향하여 나아간다. 행렬이 공원에 도착하면, 대형 횃불에 불이...
 
오쿄즈카 존카라 북부 17-2
‘오쿄즈카 존카라’ 민속춤은 메이지 이전부터 춰왔다고 전해진다. 오시노 지구에서는 단 하나뿐인 본오도리(음력 7월 15일 전후 오본 기간에 추는 민속춤)이다. 옛날에는 집집마다 민속춤을 출 때 걸치는 겐타이(어깨에 걸치는 붉은 띠)를 갖고 있었다. 태평양전쟁 때 중단되기도 했지만, 전쟁 후에는 취락의 본오도리로서 계승되었다. 그러나 1955년-1957년경,...
 
오쿄즈카 유적 북부 18
3,700~2,500년 전 무렵 사이에 존속되던 직경 약 200m의 환상(環狀) 취락이다.
1956년의 발굴조사에서는 황실에 진상되던 석기의 매납(埋納) 유구가 발견되었다. 또한 여기서 발굴된 토기의 연대에 근거하여 ‘오쿄즈카식 토기’라는 토기의 연대기준이 새로 마련되었다. ‘오쿄즈카식 토기’의 연대는 3,300년 전 무렵이다.
그 후 대...
 
노노이치시 향토역사관 북부 19
문의: 노노이치시 향토역사관 전화: 076-246-0133
휴관일: 월요일(공휴일일 경우에는 익일), 공휴일의 익일(토・일 제외), 연말연시
개관시간: 오전 10시~오후 4시 입장료: 무료
오쿄즈카 유적에서 출토된 중요문화재 ‘이시카와현 오쿄즈카 유적 출토품’과 스에마쓰 폐사(末松廃寺) 터에서 출토된 유물을 비롯해, 노노이치시...
 
이시카와현 오쿄즈카 유적 출토품 북부 19-1
중요문화재 ‘이시카와현 오쿄즈카 유적 출토품’은 조몬시대 후기 중엽에서 말기 끝에 걸친 토기・토제품류 542점, 석기・석제품류 3,642점, 골각기류 잔결(殘缺) 23점, 부토기(附土器) 잔결 12점, 총 4,219점이다.
유난히 대량으로 출토된 조몬토기는 깊은 바리와 얕은 바리가 중심이다. 동일본과 서일본 양쪽 토기의 특징을 모두 지니면서도 호쿠...
 
마도(작자: 도가시 마사치카로 추정됨) 북부 19-2
마도(馬圖)는 3마리의 말을 그린 것이다. 왼쪽 위에 적힌 글자로 보아, 도가시 마사치카가 1485년에 그린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마사치카의 작은할아버지였던 도가시 야스타카가 그렸다는 설도 있다. 「등백화설(等伯畵説)」에는 저명한 수묵화가였던 셋슈(1420-1506)가 도가시씨가 그린 말 그림을 칭찬하며, 말만 그리라고 조언하였다. 도가시 씨 역대 당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