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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석 ) 15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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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안켄
고안켄(高安軒)은 1350년에 도가시 다카야스가 다이조지(大乘寺) 제4대 주지인 메이호 소테쓰의 혼령을 모시기 위해 창건한 절이다. 1915년, 다이조지를 창건한 뎃쓰 기카이의 탑소(塔所: 유골을 모셔놓은 장소) 터라고 전해지는 장소의 토지를 개간할 때, 땅 속에서 유골이 담긴 석궤가 발견되었다. 현재의 고안켄은 유골의 안치를 겸하여 1927년에 재흥되었다. 또한 유골이 발견된 장소는 구 아라요코 도리(아라마치·혼마치 1초메)의 수호신사였던 소...
세키와케 히비키마스 현창비
히비키마스(響升)는 옛날 스모선수이다. 본명은 시미즈 이치타로이며, 1859년에 오시노무라에서 태어났다. 신장 180cm, 체중 135kg의 타고난 체격 덕분에 강렬한 밀기를 주특기로 하여, 1892년에는 세키와케(關脇: 스모선수 계급의 하나)에 등극했다. 1899년에 은퇴한지 4년 후 38세라는 젊은 나이에 병으로 사망하였다. 히비키마스의 사후에 오시노무라의 유지들과 소방사들이 다카미무스비 신사(高皇産靈神社) 경내에 석비를 세웠다. 석비가 바...
석조 부대사상
부대사(傅大士. 497-569)는 중국의 불교도로, 경전을 넣어두는 윤장(輪藏)을 창시했다. 후세에는 경장(經藏) 등에 부대사의 조각상이 안치되었다. 경전을 수호한다는 의미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석상은 1839년에 석공(石工)이었던 다쿠마가 제작하였다. 현재, 노노이치시 향토역사관에 전시되어 있다....
도가시 이에쿠니 동상
도가시 가문은 다카하시가와 강 중류 지역을 거점으로 삼았다. 1063년에 노노이치에 저택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1988년에 도가시 이에쿠니의 동상과 도가시 가문의 역사를 기록한 석비가 세워졌다. ...
후지무라 리헤이 옹 송덕비
후지무라 리헤이는 메이지 시대(1868-1912)에 이시카와현 의회 의원과 노노이치무라 촌장을 역임하였다. 또한 가나자와시에 처음으로 전기회사를 설립하고, 노노이치무라에는 기전력으로 움직이는 정미소를 지었다. 향토 산업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1935년, 주민들이 노노이치 소학교 교정에 후지무라 리헤이의 동상을 세웠으나, 태평양전쟁 때 금속자원으로서 국가에 헌납되어, 받침돌만 남았다. 지금은 로쿠라구치 공원에 안치되어 있다....
도가시 저택터의 석비
도가시 저택은 도가시 가문이 대대로 주거로 사용해 온 저택이었다. 이 저택 주변은 당시 가가국(加賀國)의 정치·경제 중심지였다. 저택의 정확한 위치는 오랫동안 미상이었다. 그러나 1994년의 발굴조사에서 저택의 해자 일부가 확인됨으로써, 14세기 이후 저택이 있었던 장소가 명확해졌다. 도가시 저택 터의 석비는 저택의 존재를 널리 알리기 위해, 1967년에 가나자와 공업대학과 지역 유지들이 힘을 합쳐 세웠다....
호쿠리쿠 도로(홋코쿠 가도)
홋코쿠 가도는 호쿠리쿠 지방을 세로로 관통하는 중요한 가도로서, 에도 시대(1603-1868) 이전에는 호쿠리쿠 도로라 불리었다. 혼마치의 기타 가문 주택과 누노이치 신사(布市神社)에 면해 있는 길, 통칭 ‘혼마치도리’가 홋코쿠 가도에 해당한다. 또한 이나리・후츠카이치・도쿠모토 지역에서도 홋코쿠 가도의 본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역참마을은 가도에 면한 쪽에 폭이 일정한 가옥들이 늘어서 있다는 점으로 볼 때, 계획적으로 정비된 것으로 추정된...
도가시씨 선업비
누노이치 신사의 도리이(鳥居) 우측에 있는 석비. 1889년에 노노이치무라의 농사 지도자인 미모우 이요몬이 세운 것이다. 이 석비에는 도가시 다다요리가 시조가 되어, 도가시 마사치카가 1488년 잇코잇키(一向一揆: 소작농, 승려, 신사의 신관들이 무사계급에 반하여 일으킨 난) 때 생을 마감하기까지 약 500년 간의 개요가 새겨져 있다. ...
쇼고인 도코 노래비
1486년, 슈겐도(修験道) 수도자의 중심인물이었던 교토 쇼고인(聖護院) 사원의 승려 도코가 노노이치를 통과했을 때 읊은 와카(和歌: 일본 고유의 시)가 이 석비에 새겨져 있다. ‘무지개가 걸려있던 하늘에 바람이 불고, 소나기가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노노이치 사람들은 분주한 듯 일을 계속하고, 멈추려 하지 않는다’라는 내용이다. 이 와카로 볼 때, 노노이치에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성황을 이루는 ‘시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기우석(벤케이의 들돌)
이 돌은 원래 쇼지쓰 하치만 신사에 있었던 것이다. 에도 시대(1603-1868)에 가뭄으로 물이 부족했을 때, 이 돌을 짊어지고 마을을 돌면 비가 내렸다고 하여, 기우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또한 미나모토 요시쓰네와 그의 가신인 벤케이가 도가시씨의 저택에 들렀을 때, 여흥으로 이 돌을 너무도 쉽게 들어 멀리 던졌다는 전설도 있다....
도로원표(노노이치무라)
도로원표는 노선의 기점 또는 경유지를 표시하는 표식을 말한다. 1873년, 정부의 요청으로 각 도도부현(都道府縣)의 현청 소재지의 주요 도로에 기점원표를 세우게 되었다. 이시카와현의 측정 기점은 가나자와시의 하시바초 교차로 부근에 설치되어, 이 기점을 기준으로 이시카와현 내 각 정촌(町村)의 거리가 측정되었다. 노노이치무라의 도로원표는 1920년에 당시 마을 사무소가 있었던 지점에 세워졌다....
뎃쓰 기카이 묘
다이조지(大乘寺)를 창건한 뎃쓰 기카이의 묘. 높이 67cm, 너비 33cm, 두께 24cm의 자연석에 ‘다이조지 개산 화상 다비 무덤(大乘寺開山和尚茶毘墳)’이라 적혀 있다. 뎃쓰 기카이는 오늘날의 후쿠이시 출신이다. 14세 때, 히에이잔(比叡山) 엔랴쿠지(延暦寺)에서 수계(受戒)하였다. 그 후 승려 도겐의 문하승이 되어 에이헤이지(永平寺)에서 주지직을 맡았다. 선종 절의 가람과 규식(規式)을 조사하기 위해 송나라에도 건너갔다. 1267년에는 ...
은덕비(미모우 이요몬)
미모우 이요몬은 1815년에 노노이치무라에서 태어났다. 인근의 백성들에게 글을 읽고 쓰는 법과 셈법을 가르치고, 사비를 털어 잡목림과 황무지를 개간한 독농가이다. 다헤이지무라는 가난한 마을이었기 때문에, 번(藩)에서 지원금을 얻어, 논밭을 일구려 하였다. 그러나 자금부족으로 계획이 실패로 끝나려던 때에, 미모우 이요몬이 자기 돈을 마을에 내놓았다. 그 결과, 7단=약 7000㎡의 새로운 논밭을 조성하는데 성공하였다. 그 후에도 논밭을 개간할 때...
노노이치역 연혁비
태평양전쟁 후 호쿠리쿠선(철도)의 전화(電火)가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노노이치에 역을 만들려는 유치운동이 1957년부터 시작되었다. 1959년에는 현지의 주민자치회가 모여, 가나자와 철도관리국에 노노이치역 유치 청원서를 제출하였다. 또한 승하차객 확보를 목표로, 아파트와 주택을 유치하는 데도 힘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 일본국유철도 측은 노노이치역을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1968년 4월부터 노노이치역의 영업을 개시하였다...
일촌일심비
쇼와공황으로 인해 일본 전체가 불황이던 가운데, 1932년, 도미오쿠무라는 부흥의 모범이 되는 경제갱생 지정촌이 되었다. ‘一村一心(한 마을 한 마음)’이라는 슬로건 아래, 잉어사육과 수박재배 등의 신사업을 비롯한 다각도의 부흥을 위해 활동을 펼쳤다. 그 결과, 실적을 인정받아, 1936년에는 전국에서 몇 안 되는 경제갱생 특별지정촌이 되었다. 이 석비는 많은 어려운 사업을 달성한 기념으로 1938년에 세워졌다. 마을 주민들의 마음의 버팀목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