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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적 ) 49 f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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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조지 터
다이조지(大乘寺)는 처음에는 도가시 이에히사가 오시노쇼라는 곳에 승려 초카이를 주지로 삼고 세운 밀교사원이었으나, 이에히사와 초카이가 에이헤이지(永平寺)에서 뎃쓰 기카이를 모셔와, 1293년에 개창한 가가 국(加賀国: 지금의 이시카와현 남부) 최초의 선종 절이다. 1488년 가가 지역의 잇코잇키(一向一揆: 소작농, 승려, 신사의 신관들이 무사계급에 반하여 일으킨 난)를 묘사한 「관지론(官知論)」에는, 다코성(高尾城)의 도가시 마사치카를 공격하는...
오시노 대총 유적
노노이치시(野々市) 내에서는 가장 오래된 유적이다. 또 광대한 데도리가와 선상지 내에서도 가장 빨리 조몬인이 정착하였다. 유적은 4,000년~3,800년 전 무렵의 것이다. 부근에는 큰 무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메이지 시대의 경지정리로 인해 봉분이 깎여, 무덤의 정확한 장소는 미상이다. 사료에 따르면, 둘레 약 73m의 원분(圓墳)이며, 주변 일대를 지배했던 수장의 분묘로 추정된다. ...
도무라 고토 집터
오시노무라의 고토 가문에 전해 내려오는 고문서인 ‘고토가(後藤家) 문서’ 약 1,800점은 이시카와현의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고토가(家)는 도가시 야스토의 3남 무네토시가 시조이다. 고토가(家)는 잇코잇키(一向一揆: 소작농, 승려, 신사의 신관들이 무사계급에 반하여 일으킨 난)를 피하기 위해 에치젠으로 달아났으나, 가가(加賀) 지역에 다시 돌아와, 오시노무라에 거주했다고 한다. 3대째 다헤(太兵衛)는 지금의 가나자와시 이즈미노 지역을 개간하...
오시노 다치나카 유적/오시노 저택터
오시노 다치나카 유적/오시노 저택터는 다치노 초등학교의 남동쪽 일대에 있는 유적이다. 오시노 다치나카 유적은 야요이 시대 중기 후반과 후기 후반의 취락터이다. 오시노 저택터는 무로마치 시대의 도가시씨 일족의 저택이다. 집주인은 1335년에 가가(加賀) 지역의 슈고(守護: 무사 관직의 하나)에 오른 도가시 다카이에의 동생 도가시 이에요시인데, ‘오시노님’이라 불리었다. 근래의 발굴조사에서는 저택 주변을 둘러싼 큰 해자와 굴립주 건물, 우물 터 등...
조구지 터
조구지(上宮寺)는 정토진종 대곡파에 속한다. 사료에는 1360년경에 유이쇼라는 승려가 오시노에 사암(寺庵)을 세운 것이 시초라고 기록되어 있다. 유이쇼가 오시노무라에 묵었을 때, 자고 있는데 머리맡에 동자의 모습을 한 쇼토쿠 태자가 나타나 초당의 재흥을 빌었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유이쇼는 몹시 황폐한 초당과 태자상을 발견한 후, 머리맡에서 들은 계시에 따라 신당을 세우고 ‘태자당 조구지’라 이름 붙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현재, 가나자와시 ...
나가이케 기타노하시 유적 /  나가이케 니시탄보 유적
나가이케 기타노하시 유적은 14세기 후반~16세기 전반에 걸쳐 형성되었던 농촌취락이다. 발굴조사에서는 크게 구획된 주거지역과 작게 구획된 주거지역이 발견되었다. 주거지역은 굴립주 건물의 주거와 우물, 그리고 작업창고로 보이는 수혈 유구로 구성되어 있다. 6번의 재건축이 이뤄진 장소도 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나가이케 니시탐보 유적에서는 1991년 발굴조사에 의해 수혈 주거 3동, 평지 주거 4동, 굴립주 건물 6동이 검출되었다. 이는 2세...
경총
경총(經塚)은 경전을 후세에 길이 전하기 위해 땅속에 묻은 후 무덤을 만든 것이다. 12세기 말엽 경에 시작된 풍습이다. 17세기 초반 무렵까지는 취락의 안전 등을 기원하며 경전의 문자를 적은 수많은 작은 돌을 쌓아 올린 무덤(역석 경총)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오쿄즈카(御経塚)에 있는 경총은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이시카와현 내에서는 드물게 평야에 자리잡은 경총이다. 지역의 역사와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유구로서 소중히 다뤄지...
오쿄즈카 유적
3,700~2,500년 전 무렵 사이에 존속되던 직경 약 200m의 환상(環狀) 취락이다. 1956년의 발굴조사에서는 황실에 진상되던 석기의 매납(埋納) 유구가 발견되었다. 또한 여기서 발굴된 토기의 연대에 근거하여 ‘오쿄즈카식 토기’라는 토기의 연대기준이 새로 마련되었다. ‘오쿄즈카식 토기’의 연대는 3,300년 전 무렵이다. 그 후 대규모 조사를 통해, 취락 중심부에 공동의 제사・집회 광장이 있었다는 점과 그 광장 주변을 주거가 둥근 띠 모...
오기가오카 야구라다 유적
오기가오카 야구라다 유적은 12세기 중반 무렵~13세기 전반의 유적이다.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25동의 굴립주 건물터가 발견되었다.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기가오카 하와이고쿠 유적에서는 13세기 전반에 있어서는 최대급의 건물터가 발견되었다. 이 주거 주변에서는 의식 등에 사용된 하지키 접시 및 태도(太刀)의 유지·관리에 사용된 교토산 숫돌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 점으로 볼 때, 이 지방을 지배한 도가시씨가 주거로...
오기가오카 하와이고쿠 유적
오기가오카 야구라다 유적은 12세기 중반 무렵~13세기 전반의 유적이다.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25동의 굴립주 건물터가 발견되었다.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기가오카 하와이고쿠 유적에서는 13세기 전반에 있어서는 최대급의 건물터가 발견되었다. 이 주거 주변에서는 의식 등에 사용된 하지키 접시 및 태도(太刀)의 유지·관리에 사용된 교토산 숫돌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 점으로 볼 때, 이 지방을 지배한 도가시씨가 주거로...
오기가오카 고쇼 유적 오기가오카 지역 내
오기가오카 야구라다 유적은 12세기 중반 무렵~13세기 전반의 유적이다. 드문드문 흩어져 있는 25동의 굴립주 건물터가 발견되었다. 단기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오기가오카 하와이고쿠 유적에서는 13세기 전반에 있어서는 최대급의 건물터가 발견되었다. 이 주거 주변에서는 의식 등에 사용된 하지키 접시 및 태도(太刀)의 유지·관리에 사용된 교토산 숫돌이 다수 발견되었다. 이 점으로 볼 때, 이 지방을 지배한 도가시씨가 주거로...
다카하시 세보네 유적
다카하시 세보네 유적은 2~3세기의 취락유적이다. 1990~1991년에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수혈주거 16동, 굴립주 건물 5동이 검출되었다. 취락의 중앙은 공터였으며, 그 주위에는 굴립주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 화재를 당한 수혈주거 4동이 확인되었다. 수혈 안에는 불에 타 숯이 된 기둥 자재와 불에 탄 흙이 많이 남아있으며, 건물의 상부구조를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또한 남아있는 토기의 상태로 볼 때, 불이 나자 사람들이 황급...
마쓰카와 슈리 저택터
마쓰카와 슈리 저택은 도가씨 마사치카의 가신 마쓰카와씨가 주거로 사용했던 저택이다.
야마고 미카와노카미 저택터
도가시씨의 핏줄을 이어받은 야마고씨의 본거지는 지금의 가나자와시 야마고마치 주변으로 추정된다. 대대로 도가시 가문의 가신이었다. 이 저택의 주인인 야마고 다카후지는 도가시 마사치카를 섬긴 인물이며, 「관지론(官地論)」에 등장한다....
포병 훈련장 터
1866~1869년 사이에 유사시 병사가 되어 총포를 다룰 수 있도록 농민들을 훈련시킨 장소. 대략 16m×8m의 큰 건물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농사사 터
1876년, 스기에 히데나오는 농업진흥이 국가의 융성으로 이어진다고 생각하여, 유럽과 미국의 농법을 도입하여 농사개량을 추진할 목적으로 농사사(農事社)를 창설하였다. 농사사는 1886년 이시카와군립 모범농장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이듬해인 1887년에는 약 27,000㎡의 전구개정(田區改正: 경지정비와 경지교환, 배수개량)을 실시하여 성공을 거두었다. 그 후 마을 단위로서는 일본 최초의 경지정리가 가미야스무라(현 가나자와시)에서 실시되었다. 이...
도가시 저택 터
도가시씨는 노노이치시의 다카하시가와 강 중류 지역을 본거지로 삼았다. 1063년에 노노이치에 저택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1221년 조큐의 난을 계기로, 가가 지역 무사단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1335년, 도가시 다카이에는 가가국(加賀國)의 슈고(守護: 무사 관직의 하나)에 임명되었다. 도시이에는 거점을 노노이치에 두고, 도가시 저택에서 정무를 보았다고 추측할 수 있다. 1441년에는 도가시 가문의 내부분열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1488년의 가...
쇼킨선 터
1904년 말이 객차를 끄는 쇼킨 마차철도회사가 개업하였다. 구간은 구 홋코쿠 가도를 따라, 지금의 하쿠산시 도노마치에서 노노이치시를 경유하여, 가나자와시 아리마쓰까지이다. 1916년부터는 전기로 구동하게 되어, 회사명도 쇼킨 전차철도회사로 변경하였다. 노노이치시 내에서의 경로는 오시노마루키를 남하하다가, 도중에 구 홋코쿠 가도를 따라 이나리마치, 후츠카이치마치, 도쿠모토마치로 향하는 것이었다. 1919년 하반기의 승객수는 34만 46명(1일 ...
노노이치 심상고등소학교 터
1872년, 학제가 공포되어, 전국에 학교가 설립되어 갔다. 1873년에 노노이치 촌락 소학교가 설립되었다. 당초에는 개인 가옥을 교실로 사용하였으나, 이듬해에는 학교건물이 지어졌다. 1892년에 노노이치 심상고등소학교로 명칭을 변경하고, 1897년에는 건물노후와 학생수 증가에 따라 학교건물을 신축하였다. 1923년에는 인접한 토지에 새 건물을 증축하였다. 1961년, 초립 도미오쿠 소학교와 통합되어, 지금의 혼마치 5초메에 새로운 소학교가 건...
기무라 다카노부 저택 터
기무라 다카노부는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이었던 기무라 시게나리의 백부이자 맛토성 성주였던 가부라키 우에몬 다이후(大夫: 관직의 일종)의 사위가 된 쇼군이다. 저택 터는 누노이치 신사의 북쪽 일대로 알려져 있다....
마시장 터
노노이치는 가나자와 조카마치에서 교토로 갈 때 홋코쿠 가도에서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역참마을이었다. 물자수송 등에 이용되는 역마가 준비되어 있었다. 1666년에는 노노이치에 87마리의 말이 구비되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1854년 6월에는 누노이치 신사의 사유지에서 마시장이 열렸다. 이것은 가가번(加賀藩)의 생산증대 정책의 하나로, 번(藩)이 좋은 말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이처럼 노노이치는 말과 인연이 깊은 땅이었다. ...
역관 터
에도 시대의 노노이치는 홋코쿠 가도를 이용하여 가나자와 조카마치에서 교토로 갈 때, 첫 번째로 만나게 되는 역참마을이었다. 역관은 공무상 여행자나 짐을 수송하기 위한 인마(人馬)를 공급하는 곳이었다. 전국의 역참에 설치되어, 인마는 역참마다 역관에서 교대하였다. 이 역관의 책임자는 ‘덴마기모이리(傳馬肝煎)’라 불렸으며, 인마를 관리하였다. 노노이치에서는 세오 가문이 이 일을 맡았다고 전해진다. 한편, 1666년에 배치되어 있던 말은 87마리, ...
전의장 터
‘전의(詮議)’란 오늘날의 재판에 해당한다. 다이쇼 시대(1912-1926)까지는 이 마을에서 범죄가 발생하면, 가나자와에서 관리가 출장을 나와 문초를 하였다.
고로 양륙장 터
홋코쿠 가도 변의 고로가와 강 부근에는 고로 양륙장(木呂揚陸場)이 있었다. 고로 양륙장은 고로가와 강물의 흐름을 이용하여 띄워 보낸 목재를 강에서 건져서 쌓아놓은 곳이다. 집재장은 통칭 ‘토장(土場)’이라 불렸으며, 약 17,000㎡의 광대한 부지에, 주위에는 높은 둑이 쌓여 있다. 에도 시대(1603-1868), 가가번(加賀藩)에서는 소나무 채벌을 금하였다. 이 때문에 조카마치에서 사용하는 땔감을 보충하기 위해, 하쿠산 산기슭에서 느티나무 등...
다이헤이지 터
다헤이지(太平寺)라는 지명은 메이호 소테쓰(다이조지 4대 주지)의 수제자였던 후샤쿠 겐이가 이 부근에 ‘다이헤이지(大平寺)’라는 절을 창건한 것에서 유래한다. 하쿠이시(羽咋市)의 요코지(永光寺)에 전해지는 사료에는, 후샤쿠 겐이를 다이헤이지의 주지로 세워 창건했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밋카이치 A 유적
밋카이치 A 유적은 조몬 시대(약 14,000년 전~기원전 5세기), 야요이 시대(기원전 5세기~기원후 3세기), 고대, 중세에 이르는 광대한 취락유적이다. 야요이 시대에는 3세기 무렵의 수혈주거와 굴립주 건물(지면에 구멍을 파고, 그 구멍에 기둥을 세워 지은 건물), 원통형으로 파 내려간 토갱(土坑), 방형 주구묘 등이 발견되었다. 또한 특기할 만한 점은 나라・헤이안 시대의 관도(국가가 관리하는 도로) 중 하나인 고대 호쿠리쿠 도로가 확인되었...
다카쓰카 고로베 저택 터
후츠카이치(二日市)에는 도가시 마사치카의 가신이었던 고로베와 백여우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옛날, 노노이치 부근에 백여우가 살았다. 이 백여우는 인간을 홀려 곤란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마사치카는 고로베에게 퇴치를 명했다. 고로베는 그 포상으로 후츠카이치의 토지를 하사 받아, 거기에 훌륭한 저택을 지었다. 또한 불교에 대한 신앙도 매우 깊어져, 저택 부지에 불당을 지었다. 마사치카가 패사(敗死)했을 때, 고로베도 사세구를 읊으며 자결하였다」라는 ...
후츠카이치 이시바치 유적
후츠카이치 이시바치 유적에서는 야요이 시대(기원전 5세기~기원후 3세기)/고분 시대(3세기 후반~7세기)/중세의 취락 및 고분 시대의 고분이 발견되었다. 야요이 시대의 경우, 기원후 1~2세기의 수혈주거 23동, 굴립주 건물 13동, 굴립주 건물 2동이 확인되었다. 수혈주거는 말각방형(抹角方形)이 가장 많다. 또한 오각형인 것도 발견되었는데, 그 중 1동은 가장 긴 변이 10m로 대형이다. 고분시대의 경우, 3세기 후반 무렵의 취락과 고분이 확...
도쿠모토 구야다 유적
도쿠모토 구야다 유적은 주로 14세기~16세기의 취락유적이다. 도랑으로 구획된 택지가 확인되었다. 택지 내에서는 굴립주 건물과 수혈유구, 토갱 등이 발견되었다. 도랑으로 규칙적으로 구획되어 있으며, 계획적으로 택지가 배정되어 있었다. 또한 진귀한 중국산 자기가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힘있는 영주의 저택 부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
고 소학교 터
1876년, 다나카무라에 고 소학교(鄕小学校)가 건립되었다. 태평양전쟁 후인 1947년에 중학교가 병설되었다. 1951년, 중학교는 맛토마치로 이전하였다. 1962년, 노노이치 초등학교에 통합되면서, 고 소학교는 폐교되었다. 고 소학교 옛터에는 고 소학교가 있었음을 나타내는 석비 등이 남아 있다. ...
미쓰바야시 젠시로 저택 터
시모바야시(下林)에는 미쓰바야시 젠시로에 얽힌 ‘지로즈카(四郞塚)’라는 지명이 남아있다. 미쓰바야시 젠시로는 정토진종의 지도자로, 가가(加賀) 지역의 잇코잇키(一向一揆: 소작농, 승려, 신사의 신관들이 무사계급에 반하여 일으킨 난) 때는 민중 측의 일원으로서 싸웠다. 1577년, 미쓰바야시 젠시로는 가가(加賀)의 하사타니성을 거점으로 삼아, 오다군(軍)의 사쿠마 모리마사의 군대와 싸웠다. 또한 1580년에는 가나자와미도(金沢御堂)에서 오다군의 ...
오초즈이케 연못
직경 2m, 깊이 1m의 물이 없는 연못이다. 메이호 소테쓰가 다헤이지무라에서 화장된 날에 물이 샘솟았다고 전해진다. 마을사람들은 하쿠산 신이 참배를 드리러 와서 손을 씻은 연못이라고 하여, 이 연못을 소중히 지켰다. 그러나 어느 날, 물을 마시려던 마을사람이 잘못하여 분뇨가 들어있는 통을 연못에 빠뜨렸더니, 물이 바싹 말라버렸다는 민화가 전해지고 있다....
산노 아라미야 유적
산노 도헤이다고시 유적은 14~15세기의 취락유적이다. 굴립주 건물과 수혈 유구가 확인되었다. 현재의 스즈시(珠洲市)에서 생산된 스즈야키 옹기와 가가시(加賀市) 주변에서 생산된 사발 등, 도자기와 하지키 접시가 출토되었다. 조몬토기와 타제 돌도끼, 토우의 파편도 출토되었다. 산노 아라미야 유적은 8~9세기의 취락터이다. 수혈주거와 굴립주 건물이 확인되었다. 취사도구인 하지키 솥·냄비와 저장도구인 스에키 옹기, 항아리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
산노 도헤이다고시 유적
산노 도헤이다고시 유적은 14~15세기의 취락유적이다. 굴립주 건물과 수혈 유구가 확인되었다. 현재의 스즈시(珠洲市)에서 생산된 스즈야키 옹기와 가가시(加賀市) 주변에서 생산된 사발 등, 도자기와 하지키 접시가 출토되었다. 조몬토기와 타제 돌도끼, 토우의 파편도 출토되었다. 산노 아라미야 유적은 8~9세기의 취락터이다. 수혈주거와 굴립주 건물이 확인되었다. 취사도구인 하지키 솥·냄비와 저장도구인 스에키 옹기, 항아리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
산노 니시요사 유적
산노 도헤이다고시 유적은 14~15세기의 취락유적이다. 굴립주 건물과 수혈 유구가 확인되었다. 현재의 스즈시(珠洲市)에서 생산된 스즈야키 옹기와 가가시(加賀市) 주변에서 생산된 사발 등, 도자기와 하지키 접시가 출토되었다. 조몬토기와 타제 돌도끼, 토우의 파편도 출토되었다. 산노 아라미야 유적은 8~9세기의 취락터이다. 수혈주거와 굴립주 건물이 확인되었다. 취사도구인 하지키 솥·냄비와 저장도구인 스에키 옹기, 항아리 등이 출토되었다. 이 유적에...
도미오쿠 소학교 터
도미오쿠 소학교는 1902년에 개교하였다. 1910년에는 고등과(高等科)를 병설하였다. 태평양전쟁 후 교육기본법에 따라, 도미오쿠 소학교와 도미오쿠 중학교로 분리되었다. 1955년, 노노이치마치와 도미오쿠무라의 합병에 따라, 소학교, 중학교가 각각 노노이치마치의 학교에 통합되었다. 현재, 도미오쿠 소학교 터는 이시카와현 농업시험장이다. 도미오쿠 소학교의 연혁과 교가가 새겨진 석비가 세워져 있다. 매년 7월 후반에는 전통행사인 ‘해충 쫓기’가 ...
호후쿠지 터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수많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고대의 대사원 터인 스에마쓰 폐사(末松廃寺) 터가 대표적이다. 이 지구는 데도리가와 선상지의 표고가 높은 지점(해발 35〜40m)에 있다. 건조하고 지면 아래에 돌이 많은 선상지의 특징상,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7세기 무렵까지는 무논을 개발하기가 곤란하였다. 7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무논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7세기 이전의, 오래 유지된 듯한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의 ...
오다치 저택터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수많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고대의 대사원 터인 스에마쓰 폐사(末松廃寺) 터가 대표적이다. 이 지구는 데도리가와 선상지의 표고가 높은 지점(해발 35〜40m)에 있다. 건조하고 지면 아래에 돌이 많은 선상지의 특징상,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7세기 무렵까지는 무논을 개발하기가 곤란하였다. 7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무논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7세기 이전의, 오래 유지된 듯한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의 ...
고겐도 저택 터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수많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고대의 대사원 터인 스에마쓰 폐사(末松廃寺) 터가 대표적이다. 이 지구는 데도리가와 선상지의 표고가 높은 지점(해발 35〜40m)에 있다. 건조하고 지면 아래에 돌이 많은 선상지의 특징상,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7세기 무렵까지는 무논을 개발하기가 곤란하였다. 7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무논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7세기 이전의, 오래 유지된 듯한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의 ...
스에마쓰 시나노 저택터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수많은 유적이 발견되고 있다. 고대의 대사원 터인 스에마쓰 폐사(末松廃寺) 터가 대표적이다. 이 지구는 데도리가와 선상지의 표고가 높은 지점(해발 35〜40m)에 있다. 건조하고 지면 아래에 돌이 많은 선상지의 특징상, 스에마쓰 지구에서는 7세기 무렵까지는 무논을 개발하기가 곤란하였다. 7세기 무렵이 되어서야 무논이 개발되기 시작하였다. 이 때문에 7세기 이전의, 오래 유지된 듯한 유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이후의 ...
스에마쓰 폐사 터
스에마쓰 폐사(末松廃寺) 터는 7세기 후반에 건립된 사원 터이다. 에도시대부터 알려졌다. 1937년, 현지에 살던 다카무라 세이코씨가 안을 내어 발굴조사가 이뤄졌는데, 이 장소가 고대의 사원 터였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1939년에는 국가로부터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61년, 다카무라씨가 용수로에서 은제 와도카이친(和同開珎: 일본 최초의 유통화폐)을 발견함으로써, 더 본격적인 발굴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1966~1967년에 문화청은...
간바야시 하야시씨 저택 터
간바야시에는 하야시씨의 저택 터가 있는데, 여기에는 사당이 세워져 있다. 옛날에는 말이나 저택과 관련한 지명도 인근에 남아있었던 듯하다. 하야시고 하치만 신사(林郷八幡神社) 북쪽에 있는 몇몇 지명으로 보더라도 인근 일대가 하야시씨의 저택 터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간바야시·신조 유적
간바야시·신조(上林新庄) 유적에서는 1990년~1995년에 걸쳐, 총 40,750㎡의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7세기 초반부터 9세기 말에 걸쳐 계속 취락생활을 영위하였음이 확인되었다. 수혈주거 85동, 굴립주 건물 54동이 발견되었다. 7세기 초반의 취락에서는 2동 정도의 수혈주거와 굴립주 건물이었으나, 7세기 말부터는 7~8동으로 이루어진 취락이 확인되었다. 8세기 후반부터는 수혈주거에서 굴립주 건물로 주거가 변화한다. 또한 풀무의 풍구(송풍...
가미신조 니시우라 유적
가미신조 니시우라 유적은 신조 2초메 교차로 남쪽에 있다. 1989년의 발굴조사에 의해, 3세기 후반~9세기에 걸친 취락이 확인되었다. 8~9세기의 취락에서는 수혈주거 5동과 굴립주 건물 15동이 발견되었으며, 취락 안에서 5번 정도 새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가미신조 니시우라 유적은 북쪽의 간바야시·신조 유적의 대취락과 인접해 있다....
가미신조 하야시씨 저택 터
19세기 중엽에는 도루이(土塁)가 남아있었다. 또한 주변에 있는 석기 시대의 석총을 파면, 심한 비바람이 덮친다는 전설도 남아있다.
시모신조 다나카다 유적
시모신조 다나카다 유적은 1994년에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수혈주거 3채, 굴립주 건물 4채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발굴된 장소는 취락 외연부(外緣部)이며, 취락의 중심부는 신조 5초메 부근인 것으로 추측된다. 수혈주거는 8세기에 지어진 것이며, 굴립주 건물은 그 이후에 지어졌다. 정치적 중심지였던 시모신조 아라치 유적 주변에 존재했던, 일반적인 취락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시모신조 아라치 유적은 1991~1996년에 걸쳐, 18,350㎡의 ...
시모신조 아라치 유적
시모신조 다나카다 유적은 1994년에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수혈주거 3채, 굴립주 건물 4채가 확인되었다. 그러나 발굴된 장소는 취락 외연부(外緣部)이며, 취락의 중심부는 신조 5초메 부근인 것으로 추측된다. 수혈주거는 8세기에 지어진 것이며, 굴립주 건물은 그 이후에 지어졌다. 정치적 중심지였던 시모신조 아라치 유적 주변에 존재했던, 일반적인 취락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시모신조 아라치 유적은 1991~1996년에 걸쳐, 18,350㎡의 ...
아와다 유적
아와다 유적은 조몬 시대 말기(약 3,000년 전)~18세기 전반까지의 유적이다. 남북 약 600m, 동서 약 500m에 펼쳐져 있다. 조몬 시대의 주거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조몬 토기와 타제 돌도끼가 출토되었다. 또한 타제 돌도끼의 박편도 다량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타제 돌도끼를 만드는 재료가 채취되던 장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8세기 후반에서 9세기 전반에 걸쳐서는 수혈주거와 굴립주 건물이 몇 동씩 무리 지어 띄엄띄엄 존재하는, 산촌(散村)...
후지오카 반도 저택 터
도가시씨의 가신 후지오카 반도의 저택 터. 후지오카 반도는 1488년에 다코성(高尾城)이 함락되었을 때에 전사하였다. 19세기에는 주변에 도루이(土塁)와 해자 터가 남아있었다고 한다.